사라 시, 시간의 조각 속으로 걸어들다
현대미술의 조용한 혁명가, 사라 시(Sarah Sze)는 일상의 사물을 집요하게 조합해 공간과 시간을 조형하는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왔습니다. 그녀의 설치작업은 회화, 조각, 사진, 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람자에게 마치 현실과 디지털 사이의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감각을 선사합니다. 이 블로그 포스트는 조형, 빛, 그리고 이미지의 흐름을 따라 걸으며 사라 시의 세계를 탐색하는 한 편의 시적 체험기입니다.
조용히 열리는 벽 틈의 세계
당신이 어느 조용한 전시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조명이 없는 무언가가 시야를 채우기 시작합니다. 스쳐가는 영상, 뒤엉킨 와이어, 흩어진 사물들. 그러나 이곳은 혼돈이 아닌, 치밀하게 계산된 시각적 질서입니다. 작가 사라 시의 작업은 시간과 공간, 사물과 이미지, 고정과 유동 사이에 선율을 남깁니다. 그녀의 전시는 전시장을 지나지 않고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게 합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세계로 들어간 당신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Part 1. 사물은 왜 흩어졌는가
사라 시는 정돈된 이미지보다 흩어진 사물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녀는 일상의 오브제—프린트된 이미지, 연필, 전선, 돌멩이, 종이조각, 조명 파편—들을 통해 현대인이 감각적으로 흡수하는 ‘세계’를 압축시킵니다. 이러한 조형 방식은 단지 수집이 아닌, 조형적 호흡입니다. 작품은 가만히 있지 않고 스스로 확장되며,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구성과 의미가 바뀝니다. 이는 그녀가 회화와 조각, 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물은 여기서 단순한 대상이 아닌, 기억의 잔해이자 가능성의 시작점으로 작동합니다.
Part 2. 빛, 그림자, 그리고 ‘작품’이라는 틈
사라 시의 대표작 다섯 점을 살펴보면, 작품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깁니다.
1. Triple Point (2013)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출품작. 사물의 충돌, 확장, 증식이 과학적 개념을 미적 구성으로 해석하는 작업.
2. Timekeeper Series (2016~)
비디오와 시계장치를 융합한 시간 기반 조각 시리즈. 이미지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을 동시에 감지하게 만듦.
3. Seamless (1999)
박스, 종이, 전구, 펜 등 다양한 오브제를 중첩시켜 공간을 확장하는 초기 대표작.
4. Measuring Stick (2020)
일상 사물과 측정도구의 비유적 결합. 인간 중심적 좌표를 해체하며 공간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함.
5. Night into Day (2020)
파리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전시. 낮과 밤의 시간 리듬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몰입형 설치작.
Part 3. 시간의 진열장, 2025년 전시일정으로 이어지다
2025년 사라 시는 아시아와 미국에서 의미 있는 두 차례의 주요 전시를 개최합니다. 작가의 디지털·물리적 공간 탐색은 더욱 확장된 조형 언어로 드러나며, 관람객에게 시간, 기억, 이미지의 흐름을 체험하게 합니다.
1. 홍콩 가고시안 갤러리
📍 장소: Gagosian Hong Kong, Pedder Building, Central, Hong Kong
🗓️ 일정: 2025년 3월 25일 – 5월 3일
사라 시의 아시아 첫 개인전으로, 대형 설치 회화와 매달린 조각 작품을 선보입니다. 디지털 이미지의 반복과 물리적 오브제의 겹침을 통해 현대인의 시각 피로와 감각적 경험을 탐색하며, 도시 공간과의 조화 속에서 몰입형 설치작으로 구성됩니다.
2. 몬트클레어 미술관, 뉴저지
📍 장소: Montclair Art Museum, New Jersey, USA
🗓️ 일정: 2025년 2월 8일 – 7월 6일
전시 제목은 A to Sze: Collecting at MAM (2000–2025)로, 사라 시의 작품 Random Walk Drawing (Air)이 주요 전시물로 소개됩니다. 공기의 흐름을 시각화한 조각적 드로잉을 통해 시간과 움직임의 감각을 공간화한 작품이며, 미술관의 수집 아카이브 맥락과 함께 전시됩니다.
Part 4. 설치의 언어, 세계를 꿰매는 실
사라 시의 2025년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전시가 아닌, 관람자 스스로가 이미지 속을 걷고, 기억 속을 헤매고, 시간의 층을 가로지르는 체험의 장이 됩니다. 그녀의 작업은 공공 공간과 화이트 큐브의 틀을 넘어서며, 전시장의 구조 자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장치’로 전환시킵니다. 특히 홍콩 가고시안 전시에서는 천장에 매달린 오브제들이 관람자의 시야 위를 흐르며, 빛의 궤적과 공간의 반향을 시각적으로 이끌어냅니다.
한편 몬트클레어 미술관에서의 회고적 접근은 사라 시의 지난 25년을 압축적으로 조망하게 해줍니다. 단일 작품이 아니라, 수집된 기억과 축적된 사유가 전시의 구조로 구성되며, 그녀가 구축해온 ‘흩어짐의 미학’이 시공간을 연결하는 실처럼 작동합니다. 이처럼 사라 시의 전시는 단순히 ‘보는 것’에서 ‘겪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설치미술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 결정적 질문이 됩니다.
Part 5. 이렇게 감상해보세요
사라 시의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먼저 '전체를 한눈에 보려는 시도'를 내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항상 조각나 있고, 주변부에서부터 내면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사물들은 시간의 파편이자 기억의 부유물이기에, 감상자 자신만의 서사로 연결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품을 정면에서 보는 것뿐 아니라, 옆에서, 아래에서, 혹은 걸어다니며 천천히 시선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적합한 감상법입니다.
특히 홍콩 전시에서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조형 구조물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며 관찰하는 감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세요. 또한, 몬트클레어 미술관 전시에서는 하나의 작품이 다른 작품과 연결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으므로, 각 설치 간의 호흡과 리듬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체적으로 사라 시의 예술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 시대에 '천천히 보기'라는 감각적 사유를 다시 상기시키는 예술적 제안입니다.
Part 6. 감상의 동선과 사운드
전시 공간에 따라 감상의 방식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사라 시의 전시에서는 다음의 동선을 추천드립니다. 입장 직후 전체 구조를 한 번 훑어본 뒤,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듯 이동해 보세요. 작품 간의 연결성과 반복되는 오브제의 배치를 인지하고, 시선이 머무는 지점마다 잠시 정지하며 자신만의 해석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감상에 어울리는 사운드트랙으로는 Max Richter의 "On the Nature of Daylight" 또는 Ryuichi Sakamoto의 "Solari"와 같은 곡이 추천됩니다. 이러한 음악은 사라 시의 설치미술이 유도하는 시간성과 정서적 깊이를 더욱 극대화해주며, 시각과 청각의 감각을 하나의 몰입형 경험으로 통합해줍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과 함께 전시를 감상한다면, 훨씬 풍부하고 개인적인 ‘작품과의 대화’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에필로그: 사라 시의 세계에서 돌아오는 길
사라 시의 작업은 조각이라 불리기에는 너무 유동적이며, 영상이라 하기에는 너무 조형적입니다. 그녀의 작품은 장르나 언어의 정의로부터 멀어져, 관람자의 움직임과 시선, 시간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조각된 시간의 경험을 만듭니다. 그 세계에서 빠져나와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 주변의 사소한 사물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평범했던 풍경이 ‘정돈된 틈’이 아니라 ‘흩어진 시’임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라 시의 예술은 삶에 잠재된 감각을 일깨우는 공간적 시(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