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 "이불(Lee Bul)"은 조각, 설치, 퍼포먼스, 회화, 판화 등 다양한 작품들을 통하여 유토피아, 몸의 정치학, 여성성, 기술과 권력 구조를 주제로 실험적 작업을 지속해왔습니다.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 하우저앤워스의 전속 작가로 한국작가로서는 최초로 합류하였으며, 작품은 심화된 세계관과 도발적인 미학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이보그, 근대와 포스트휴머니즘, 기억과 상처가 교차하는 그녀의 예술은 단지 시각적 충격에 그치지 않고 동시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사유를 요청합니다.
유토피아를 뒤집는 상상력
이불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0년대 초 한국 미술계에 등장한 이래 줄곧 동시대 사회와 정치, 과학기술 그리고 여성의 신체에 대한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며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드로잉, 건축구조물,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인간 존재와 기술 문명, 권력 구조에 대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작품은 미래적이면서도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내부에는 끊임없는 질문과 저항의 언어가 존재합니다. 특히 그녀의 작업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유토피아’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세상과는 조금 다릅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질서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에 의해 조정되고 통제되는 공간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런 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유토피아라는 단어 자체를 되묻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갑니다.
기술과 육체, 여성성과 사이보그, 기억과 폭력의 흔적을 엮어낸 그녀의 세계는 한국적 정서와 국제적 감각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하나의 실험장이자 사유의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으로 읽는 이불의 미학
Cyborg Series (1997–2011)
이불의 대표작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사이보그 시리즈’입니다. 인체의 일부만 구성된 듯한, 혹은 기계와 결합된 듯한 조각들은 단순한 미래지향적 이미지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여성성과 인체의 단절, 기술 문명의 폭력성을 동시에 암시합니다. 이불의 사이보그들은 도발적이면서도 아름다우며, 관람자에게 인간의 몸이 지닌 정체성과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사이보그는 단지 SF적 상징이 아니라, 억압된 몸의 해방을 위한 상상력의 도구로 작동합니다.
이 시리즈는 현대사회의 이분법적 사고(예를 들어 인간과 기계, 남성과 여성, 전체와 부분)을 해체하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를 상상하게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시리즈는 단순한 조각이 아닌, 사회 구조와 정체성에 대한 급진적인 질문을 던지는 현대적 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이보그 W1-W4>,1998. 실리콘 주형,폴리우레탄 충전재,페인트 안료. 사진:윤형문. 작가 제공
출처 : https://edspace.american.edu/cy-candy/lee-bul/transition-to-cyborgs/
Mon grand récit (2005)
이불의 대표 설치작품인 "Mon grand récit"는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의 '거대서사(grand récit)' 개념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입니다. 이 작품은 계단, 경사로, 공중부양 구조물,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 등으로 구성된 모형 도시와 같은 설치물로, 한눈에 보기에 정교하고 질서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구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근대적 유토피아에 대한 불신과 이상향의 붕괴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떠 있는 듯한 구조물들과 비현실적인 경사들은 과거에 믿어왔던 진보와 이성의 거대 담론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풍자하며, 동시대 관람자에게 깊은 사유를 유도합니다.
특히 리오타르가 말한 ‘이제 거대한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찰을 공간적으로 번역한 이 작품은, 무너진 이상과 해체된 정체성이 공존하는 공간을 표현합니다.
이 작품은 2005년 이후 카셀 도큐멘타를 비롯한 국제 전시에서 여러 차례 소개되었으며, 2018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회고전 Lee Bul: Crashing과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도 핵심 작품으로 전시되었으며, 그녀의 작품에서 정치성과 미학이 정점에 이른 순간으로 평가받습니다.
Perdus (2017)
프랑스어로 '잃어버린'을 뜻하는 제목처럼, 자아와 기억, 감각의 해체를 시도한 설치 작업입니다. 이 작품은 LED 조명과 반사되는 거울 파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람자가 그 안에 들어서면 자신의 모습이 수없이 분절되고 왜곡된 채 반사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미러룸(mirror room)' 형태의 설치작업을 넘어서, 거울이라는 재료가 갖는 상징성(자기 반성, 기억, 왜곡)을 활용하여 관람자가 스스로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다시 체험하도록 유도합니다. 작품 속 공간은 한없이 빛나지만 동시에 불안정하며, 그 안에 들어선 관객은 현실과 허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사회적 억압과 역사적 트라우마 속에서 분열되고 해체될 수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작품 전체는 관람자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만듭니다. 이로써 작품 "Perdu"는 감상자가 ‘보는 존재’에서 ‘비춰지는 존재’로 위치를 이동시킵니다.
본 작품은 2018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전시 Lee Bul: Crashing에서 중심적으로 소개되었으며, 이불의 작업 중에서도 특히 감각적 몰입과 철학적 사유가 밀도 높게 결합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Willing To Be Vulnerable – Metalized Balloon (2015–2016)
2015년에서 2016년 사이에 제작된 대형 설치작품으로, 공기를 가득 품은 금속성의 비행선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기술적 상상력과 인간 존재의 취약함이라는 상반된 주제를 물리적 형태로 동시에 구현합니다. 작품은 금속필름, 나일론의 메탈릭한 재질로 인해 강인하고 광택 나는 외형을 지녔지만, 그 내부는 공기로 채워져 있어 극도로 연약하고 불안정합니다.
냉전기 시기의 과학기술과 우주 개발에 대한 유토피아적 열망에서 착안하여 이 작품을 구상하였으며, 동시에 그러한 기술적 환상이 어떻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이 비행선을 제시합니다.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이 구조물은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며, 우리가 의지하는 '기술적 진보'의 실체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불완전한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2016년 "Art Basel Hong Kong" 그 이후 "Hayward Gallery, London" 에 전시되었으며 전시장 공간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자랑합니다. 2022년도에는 증강현실(AR) 버전으로 서울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서도 선보였습니다.
Lee Bul: Prints (2023–2024)
《Lee Bul: Prints》는 2023년 11월 4일부터 12월 23일까지 싱가포르 STPI – Creative Workshop & Gallery에서 처음 선보인 후, 2024년 5월 21일부터 6월 15일까지 서울 BB&M 갤러리에서 전시된 판화시리즈입니다.
판화 매체를 통해 그녀의 기존 조각 및 설치 작업에서 다루었던 주제(기술과 인간, 역사와 기억,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등)을 새로운 방식으로 탐구한 것으로 총 5개의 새로운 시리즈 약 60여점을 공개하였습니다. 실크스크린과 디지털 프린트, 조각적 레이어링을 결합하는 형식의 비전통적 재료를 활용하여 판화를 하나의 독립된 조형예술로 확장하였습니다.
두 전시 모두 설치 공간의 감각적 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특히 거울 바닥을 통해 관람객의 시선을 작품에 반사되도록 구성함으로써, 관람자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방식으로 몰입을 유도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판화를 벽에 거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반사되고 중첩되는 감각 속에서 경험하게 함으로써 판화 자체를 설치의 일부가 되게 하였으며 이는 이불 작가의 예술 세계를 판화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확장시킨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Untitled – SF 시리즈: 12~16겹의 종이, 비닐, 포일을 층층히 쌓아 올린 작품으로, 깨진 거울이나 도시의 유리 파사드에서 반사되는 빛을 연상시키며, 단일한 역사적 내러티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Untitled – CC 시리즈: 구리 가루를 산화시켜 만든 파티나 효과를 활용하여, 각 작품마다 고유한 "개성"을 지닌 변형된 판화를 제작하였습니다.
Untitled – PI / SI 시리즈: 동일한 원본 이미지를 기반으로 서로 다른 기법과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된 두 시리즈로, 이불 작가는 이를 "도플갱어"라고 표현하며, 하나의 이야기에도 여러 측면이 존재함을 시사합니다.
동시대 미술에서 이불의 위치
이불의 예술은 단순히 조형적 혁신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 사회와 문명에 대한 깊은 사유를 동반합니다. 그녀는 사이보그, 거대서사, 디스토피아와 같은 키워드를 통해 인간과 세계, 기술과 몸의 관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합니다.
한국적 정체성과 글로벌 감각을 모두 지닌 그녀의 작품은, 현시대의 불안과 균열을 날카롭게 포착하며 관람자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전통을 전복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이불의 작업은, 오늘날 현대미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갤러리에서의 협업, 작품 사진과 전시 정보 수록]